::::국민바른체형만들기 운동본부::::

 
 
 
HOME > 커뮤니티 > 공지사항
 
척추교정의 이해 관리자
2010.11.19 11:27

 

 



척수로부터 갈라져 나온 31쌍의 척추신경이 척추사이 추간공을 통과하는 중에 척추의 부정열 즉, 물리적인 충격이나 척추퇴행 등에 기인하여 압박됨으로 해서 기능 이상을 일으키고 있는 곳을 외과적인 수술이나 약물 치료를 하지 않고 손으로 교정하여 자연치유하는 과학이다.
현대에 와서... 1895년 다니엘 데이비드 팔머 [ DANIEL DAVID PALMER ] 에 의해서 중국의 추나(경락맛사지), 인도의 요가 , 일본의 지압 , 서양의 스포츠맛사지 등 다양한 기술을 체계적으로 종합, 재구축하여 그리스어인 손을 뜻하는 카이로( CHIRO )와 치료를 뜻하는 프락티스( PRACTICE )의 합성어인 CHIROPRACTIC을 그가 행한 의술의 명칭으로 하여 재탄생 시킨 것이다.


수기요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카이로프락틱」이라는 문자나 단어에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카이로프락틱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으나 그 유래나 초기의 이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카이로프락틱과 현대의학은 형제와 같은 사이다」라고 하면 놀라는 사람은 많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서로 불려지는 파피루스(B.C.2500~1500년 사용)중에 손으로 척추를 자극하여 병을 치료하는 기술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고 전해지며 고대 이집트인, 고대 메소포타미아인 등에 의해 이 기술이 활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현대의학의 기원이며 카이로프락틱의 기원이기도 하다. 고대문명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등에서 시작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이 문명에는 어떤 공통된 사상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스피릿(Sprit) 관념이며 인간의 운명은 Sprit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고 방식이었다.

고대에도 병이라는 현상이 생기고 그 병을 고치는 전문가가 있었다. 이 전문가들은 당시의 사상에 규제되었으며 고대의술도 Sprit(신성, 성령, 악마)설에 의해 이루어져 병자는 악마,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을 쫓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었다. 이 행위의 전문가는 주술사나 무당, 신관이나 승려 등이었던 것도 앞에 기술한 시대 배경으로써 수긍될 것이다.
따라서 그 전문가들 중에 병자의 등 가운데나 척추를 구타하거나 찌르거나 눌러서 악령을 쫓으려는 기술이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 것이다. Sprit설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는 별도로 하고 그 치료 형태는 틀림없이 카이로프락틱이다.

앞에서 기술한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의 의술은 B.C.2000년경에 그리스에 전파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에는 의술의 신이라는 아스클레피오스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아폴로(Appollo :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음악, 궁술, 예언, 의술의 신)는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고대 그리스인에게 신탁을 부여해주던 장소로 불리우는 델포이신전을 아스클레포이아로 개칭하여 여기를 주병원으로 하고 그리스 각지에 분원을 설치하여 의료활동을 행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 의술의 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 능하다고 전해지고 있음)의 자손이 B.C.1200~700년경에 각지에 아스클레피오스 사원을 건설하고 거기서 의료활동을 했다. 그중에서도 서아시아의 코스섬이나 쿠니도우스섬의 아스클레피오스 사원이 유명하며 의학교도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 설립지 중의 하나인 코스섬에서 후세의 「의학의 아버지」 또는 「의성」이라고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 B.C.460~375년)가 탄생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얼마후 이집트의 알랙산드리아 의학교에서 미신을 배제하고 관찰이나 경험을 중시한 의학을 수립하였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치료 중에서 주술적 요소나 공상적 이론 부분을 배제하고, 사실적인 관찰에 따라 병의 증상이나 경과를 기록하고 그것을 토대로 연구하여 새로운 독자적 의학관을 구축하였으며 현대의학의 기초를 수립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에게는 스스로 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하고 그것을 유지해가는 생명력이 있으며, 그 자연의 힘을 보좌하는 것이 의사의 본래 임무이다」라고 하였고, 병든 상태에서 건강체로 회복하려는 힘을 생명력이라고 일컫고, 병의 치료에 대해서는 원인을 탐구하는 것, 그 병의 본 모습을 아는 것이 미래의 의학이 가져야할 자세라고 하였으며, 수많은 연구를 통해 병의 원인을 발견해 냈다.

그의 연구를 기록한 의학서 중에는 카이로프락틱스(수의학)에 관해 많은 기록이 있으며 골격이상에 의해 여러가지 병이 발생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웠던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골격이상과 병과의 관계 및 그 치료법의 연구가 진행되고 그 연구결과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카이로프락틱 과학화의 기초를 볼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이후는 카렌(B.C.199~129년)이 손가락 마비를 경추 교정으로 치료한 것 등의 이야기가 있는 정도이며 척추수기(Spinal Manipulation)는 학문과 기술의 양면에서 거의 발전되지 못하고 그 기술이 유럽에서 가정요법적으로 전승되어진데 그쳤다.

이 기술의 일부가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해간 유럽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신천지인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이 기술과 아메리카 인디언(대륙원주민)에게 전해내려오던 골격 치료기술이 하나의 의학 형태를 이루어 역사상에 재등장한다(1874년).

그것의 의학체계명이 정골법(Osteopathy)이며, 이 일의 주역은 Dr.앤드류 테일러스틸(Andrew Taylor Still)이라는 외과의사였다.
Dr.Still이 오스테오파시 발표로부터 21년후 다니엘 데이비드 팔머(Daniel David Palmer)에 의해 카이로프락틱이라는 의학이 1895년 발표된 것이다.
D.D.Palmer는 1845년 3월 17일에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후 꿀제조나 식료품 판매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1885년에 아메리카 아이오와주의 데븐포드에 이주하여 거기서 자기(磁氣)치료를 하기 시작했다.(이 요법은 Dr.폴카스트로에게서 배웠다고 함)

그는 자기요법을 행하는 한편 수장요법(Handtheraphy)이나 정골법(Osteopathy), 베사라우스의 해부학 등으로 연구하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역사가 짧은 미국에는 당시 여러가지 사정으로 의사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대중의 필요성에 의해 많은 민간요법사가 활약했으리라 상상되는데 D.D.Palmer도 그중에 한 사람 이다. D.D.Palmer는 다음과 같은 계기로 척추교정의 치료법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하인인 하비 릴러드가 일하다가 짐을 들려고 했을 때 갑자기 등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 이후 청력이 저하되다가 끝내는 난청이 되었다. D.D.Palmer가 그의 등 가운데를 만지면 어떤 이상한 융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난청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그 추골을 정상위로 회복시키려고 여러가지 연구를 하여 시술을 계속 한 끝에 이 이상한 융기는 정상으로 돌아가고 그와 동시에 청력도 바로 회복된 것이다. 계속되는 연구끝에 명성을 얻게된 D.D.Palmer는

그 후 그는 생명과 건강을 철학적으로 사고하거나 척추의 이상과 병과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에 몰두했다고 한다.
하비 릴러드씨에 의한 극적인 효과를 얻은 치료 경험을 계기로 하여 척추와 병의 관련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몇사람의 조언자와 협력자를 얻게 되었다. 사무엘.H.위드(Samuel.H.Weed) 목사는 그리스어의 cheir(손)와 prakticos(기술)의 합성어인 CHIROPRACTIC을 그가 행하고 있던 의술의 명칭으로 정할 것을 시사했다.

그날이 1895년 9월 18일이며 후에 그날을 카이로프락틱 탄생일로 정하고 이후 매년 9월 18일을 카이로프락틱 데이로 정하여 그의 공적을 치하하고 카이로프락틱 탄생일을 축하하며 카이로프락틱의 건전한 발전을 기원하는 날이 되었다.
짐 아트킨슨 박사(Dr. Jim Atkinson : 학문상의 조언자)로부터 그가 실시하고 있는 의료기술과 유사한 변위된 척추의 복원기술이 고대 이집트인 이래 행해져왔음을 배웠다. 그리고 옛친구인 W.J.고르빌(W.J.Goulvill : 유명한 저작가, 웅변가, 여행가)씨로부터 카이로프락틱의 원리는 아스클레피오스와 그의 형제들에 의해 B.C.420년에 알려졌고, 기술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또한 그는 1895년에 파리를 방문했을 때 치료 봉사를 전문으로 하는 초자연협회 사람들과 만나 아스클레피오스의 고대 종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행했던 의료방법중에 카이로프락틱과 흡사한 기술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경험은 그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어 이것이 일종의 자신감이 되었고 그러한 것들이 어떤 사명감을 형성하여 수많은 박해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카이로프락틱 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저서 「 The Chiropractor’s Adjuster 」에서 기본 원리 및 이로부터 발전된 카이로프락틱의 제원리는 척추동물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것이다. 인쇄물이나 구두로 설명해왔으나 변위 추골의 복원을 최초로 행한 사람은 내가 아니며 이 기술은 수천년 전부터 실제로 행해져 왔던 것임을 여기서도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내가 최초로 한 것은 극돌기와 횡돌기를 「 지레 」로 사용하여 변위를 일으킨 척추를 복원시킨 것이다. 또한 이 사실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과학을 창시하고 이 과학은 멀지않아 치료법 이론과 실제를 혁신하게 되는 길을 열게 될 것이다.” 라고 기술하고 있는 점에서도 창시와 재구축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예로부터의 경험적으로 행해져온 하나의 치료법을 보다 합리적으로 고찰하여 독자의 이론과 기술을 구축한 것이 D.D.Palmer인 것이다.
일종의 우연적인 사건이라는 요행의 형태를 벗어나 나중에는 D.D.Palmer 자신의 노력에 의해 그는 카이로프락틱의 재발견자 또는 재구축자로서도 부상될 것이다. 어떠한 위대한 인물도 그 이전의 인류 문화 유산의 은혜하에 있으며 위대한 발견이나 창조도 그 이전의 문화와 기술의 영향하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카이로프락틱도 한편 근대적으로 편성된지는 아직 10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카이로프락틱은 전도양양한 장래성 있는 제3의학으로 부상된 의술이다.

D.D.Palmer가 발표한 카이로프락틱은 많은 경험의학과 마찬가지로 의학계에서 이단시되어 여러박해를 당하고 고난의 길을 걸어 왔으나.. 그 후 그의 아들 B.J.Palmer, 손자인 D.D.Palmer(2세)에 의해 카이로프락틱은 계승, 발전해 왔다.

그들은 결코 고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이 믿는 길에 매진하고 연구를 거듭함으로서 민중의 지지도 얻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모든 주에 카이로프락틱이 허가되어 의료활동을 행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규모(현재는 80개국)로 발전하는 중이다.